제목 :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작가 : 서머싯 몸 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
최초 출간 : 1919년
장르 : 소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 속 한 남자.
책표지에 실린 이 그림은 폴 고갱(1848~1903)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1891)으로 남자는 바로 화가 자신이다.
소설 [달과 6펜스]는 작가 서머싯 몸이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시킨 "찰스 스트릭랜드" 라는 남자에 대한 전기 소설이다. 폴 고갱의 삶과 작품들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한 소설, 말 그대로 '픽션'이므로 주인공이 폴 고갱 그 자체라고 보면 곤란하다.
그래도 그의 모델이 폴 고갱이라는 사실은 글을 읽으면서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는 더 생생하게 전해진다.
<줄거리>
소설의 화자인 작가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트릭랜드는 죽은 후에 천재 화가로 칭송받고 있지만 생전에는 평범한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인간이었다. 작가는 런던의 문화 사교계에서 그의 부인을 먼저 알게 되고 그녀를 통해 당시 증권 중개인이었던 스트릭랜드를 만난다. 그는 말주변이 없고 과묵할 뿐 별다른 특별함은 느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부인 역시도 자신의 남편을 문화, 예술과는 거리가 먼 무척이나 평범한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집과 가족을 떠나버린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작가는 부인의 부탁으로 그를 만나러 파리로 향한다. 떠도는 소문과 부인의 추측처럼 한 여자와 바람이 나 도망갔다고 생각한 작가는 그가 그의 가족을 떠난 이유를 듣고 놀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는 한참 동안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자가 돌아 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왔다는 것이다. 작가는 런던에서 일군 삶과 가족을 위해 돌아가지 않겠냐며 그를 설득하지만 스트릭랜드는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그리고 지난 삶에 대한 미련도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한다. 혀를 내두를 만큼 이기적인 태도에 작가는 홀로 런던으로 돌아가 부인에게 그의 뜻을 전한다. 그렇게 스트릭랜드는 가족과의 연을 끝내버리고 만다.
시간이 흘러 작가는 파리로 거처를 옮긴다. 그 곳에서 오랜 친구인 더크 스트로브와 오랜만에 재회한다. 그는 성격 좋은 화가인데 키가 작고 통통하며 모든 이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미술에 대한 열정과 혜안에 대해서 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는 작고 소박한 스튜디오에서 부인과 살고 있었는데 그의 부인 블란치는 차분하고 살림도 군말 없이 하는 여자로 스트로브는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녀가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남편과 작품을 무시한다는 이유에서이다. 반면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그의 작품에 대단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스트로브를 통해 스트릭랜드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사이 그의 괴팍하고 지독한 성격은 더하면 더했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트릭랜드가 보이지 않게 되자 스트로브는 그를 무척 걱정한다. 내키진 않았지만 스트릭랜드의 집을 찾아간 작가와 스트로브는 거의 죽어가듯 앓고 있는 그를 발견한다. 스트로브는 블란치에게 그를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간병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한다. 그런데 그 차분한 부인이 펄펄 뛰며 극구 반대를 하는 것이다. 자신은 그가 죽기보다 더 싫으니 절대로 그를 데려오지 말라고. 하지만 더크의 설득으로 결국 부인은 그의 뜻을 받아 들이게 된다.
스트로브와 부인의 지극정성으로 스트릭랜드는 차츰 회복되어 간다. 그리고 그는 그 곳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작업에 방해된다며 스트로브에게 스튜디오를 나가라고 한다. 작가는 스트로브의 과도한 순진함과 스트릭랜드의 은혜도 모르는 이기적인 태도에 화가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울상이 된 더크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다음 그의 말은 경악스럽기 그지 없었다. 스트로브가 스트릭랜드에게 이제 병이 다 나았으니 스튜디오를 나가달라고 말하자 그는 그 자리에서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그 옆에 있던 블란치가 자신도 그와 함께 떠나겠다는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스트로브가 부인에게 절절히 매달리며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간청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완전히 스트릭랜드에게 가버린 후였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튜디오까지 그녀와 스트릭랜드에게 주고 나와버린다. 작가는 은혜도 모르는 스트릭랜드에게 오만 정이 떨어지고 그가 진짜 블란치를 사랑하는지 의심한다.
... 스트릭랜드는 어느 누구보다 그런 약점에 빠질 위인이 아니었다. 사랑이란 무엇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그가 그런 상태를 견뎌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미지의 어떤 것으로 몰아 가는 그 불가해한 갈망을 방해하는 것이 혹시 자기 안에 들어와 있다면, 어떠한 괴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니까 결국은 만신창이가 되고 피투성이가 된다 하더라도 그 방해물을 가슴속에서 뿌리채 뽑아 낼 수 있는 인간 같았다.
그리고 삼 개월 정도가 흐른 어느 날 스트로브는 블란치가 자살 시도를 했다고 알려온다. 결국 그녀는 죽고 만다. 절망에 빠진 스트로브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돌아가 스트릭랜드가 남긴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 그림을 찢어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고 그림을 들여다본다. 그는 그림에서 경외감이 들 정도의 예술의 황홀을 경험하게 된다. 스트릭랜드를 다시 만나 자신과 함께 고향에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할 정도였다.
거기에는 어떤 영적인 것, 혼을 어지럽히는 전혀 새로운 어떤 영성이 깃들어 있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상상을 이끌어 가면서, 영원한 별들만이 빛나는 어둡고 텅 빈 우주를 - 벌거벗은 영혼이 두려움에 떨면서 새로운 신비를 찾아 모험의 여정을 나선 그런 우주를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작가는 스트릭랜드를 만나 행복하던 스트로브 부부가 파멸을 맞은 것에 대해 질책하지만 돌아온 것은 여전히 남의 비극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뻔뻔한 그의 반응뿐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작품을 보여준다.
우주의 혼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해 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그림들에 혼란과 당혹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 있는 정서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나는 스트릭랜드에게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억누를 수 없는 어떤 공감이었다.
그것이 작가와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리고 스트릭랜드는 마르세유로 떠난다.

한참이 지나 작가는 타히티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스트릭랜드가 마르세유에서부터 이 곳 타히티에서 죽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듣게 된다. 그때 그는 죽은 뒤 인정받은 비운의 천재로 주목받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헐값인 시절에 구입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다. 작가는 스트릭랜드와 마르세유에서의 길바닥 생활을 함께한 니콜스 선장으로부터 그가 어떻게 거친 떠돌이의 생활을 했는지 듣게 된다. 그러다 휘말린 싸움으로부터 도망친 그는 늘 가기를 원했다던 타히티로 향하게 된다.
타히티에 도착한 스트릭랜드. 이 곳에서 그는 속세에서 멀어진 채 그림에만 몰두하는 삶을 영위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요란한 성격의 호텔 여주인의 도움을 받아 살던 그는 어린 원주민 여자 아타와 결혼을 하고 그녀와 함께 산속 깊은 곳에 집을 짓고 살며 더더욱 그림밖에 모르는 괴짜로 세속적 삶에서 완전히 멀어진다.
스트릭랜드는 아타와 아이들 그리고 할머니와 한 청년과 함께 그만의 천국에서 살아간다. 작가는 한 의사로부터 그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가 병이 났다는 얘기를 듣고 먼 산길을 헤치며 찾아간 집에서 의사는 나병에 걸려 얼굴이 망가지기 시작한 스트릭랜드를 만난다. 한사코 치료를 거절하는 그를 다시 보게된 건 몇 달 후였는데,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죽어있는 방의 벽에 불을 비추며 의사는 그가 남긴 벽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떤 대단한 광휘의 힘을 보게 된다. 마치 이 세상 너머의 어떤 진리를 본 자가 그린 천국도 같은 느낌의 그림이었다. 나병으로 인해 눈까지 멀어버린 그가 마지막까지 그린 벽화.
창세(創世)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다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유언에 따라 집을 불태워버린다. 그의 영혼이 담긴 마지막 작품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작가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스트릭트의 예전 가족에게 자신이 들은 그의 삶을 전한다.
<캐릭터>
찰스 스트릭랜드

찰스 스트릭랜드를 보며 한 사람이 사회에 속해 누릴 수 있는 편의와 혈연의 정까지도 한 순간에 끊어버릴 정도의 예술을 향한 열정과 의지는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이 질문은 어쩌면 스트릭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어쨌든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결단이 섰다면 이에 방해가 될만한 그 무엇이라도 끊어내고 그림에만 집중하는 것. 그 행위가 중요할 뿐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는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그의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고 따라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로서 바라는 명성과 세상의 인정마저도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예술의 경지를 향한 추구. 그것이 그의 삶이 되고 그 사람 자체가 예술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죽은 후에 그의 천재적이던 작품들이 알려지게 되는데 만약 그가 살아생전에 그런 인정과 돈을 받게 되었더라도 그 따위 것이 왜 중요하냐고 물었을지 모른다.
이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하지만 어쩌면 그다지 복잡한 인물은 아니고 거칠고 폭력적이리만큼 단순한 인물이다. 이런 그의 성향 때문에 그가 가는 곳마다 비극이 꽃을 피운다. 그는 그의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버렸고 한 행복했던 부부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어린 부인과 자식을 두고 치료도 받지 않고 눈까지 멀어버린 채로 그림만 그리다 죽어버린다. 그러나 그가 가는 곳마다 불같은 사랑도 함께 한다. 자신을 그토록 애정하던 남편을 버리고 종국엔 독극물까지 마셔버린 뜨거운 블란치의 사랑. 자신을 때리던 남자였음에도 세상 끝까지 함께이길 바랐던 어린 아타.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남긴 그의 작품들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분명 예술을 향한 사랑이 타오르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비극을 건넨 그의 작품을 본 더크 스트라로브마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한 사람으로서 속세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거친 원시로 돌아가 예술 그 자체가 되어버린 그의 삶 . 그리고 그 끝에서 그는 야생의 날것 그대로의 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경지를 남겼다.
+ 더크 스트라로브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스트릭랜드만큼이나 흥미로웠던 인물이 더크 스트라로브라는 캐릭터였다. 그는 스트릭랜드의 대착점에 서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가 타인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하며 인정과 양심으로부터 멀어진 괴팍한 인물이라면, 스트라로브는 타인에 대한 과한 애정을 가지고 감정과 물질적 희생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나는 스트라로브를 측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고 마지막까지 보여준 그의 용서와 희생적 행동 그리고 예술적 혜안으로 자신에게 비극을 준 사람의 능력마저도 인정하는 '오픈마인드'를 보여주는 그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런 그를 바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스트릭랜드가 되는 것이 어려운 만큼이나 스트라로브가 되는 것 또한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망과 자존심으로 인해 타인을 용서하거나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그와 스트릭랜드의 공통점이 딱 하나가 있는데 그건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다. 둘 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예술의 이상을 바라보는 삶을 지향한다. 그러나 스트릭랜드가 자신의 삶 자체가 예술의 이상이 될 정도로 뜨거운 예술가라면, 스트라로브는 자신의 삶 속 피어난 사랑과도 같은 예술을 애정하는 예술가이다. 모든 세속적 굴레에서 벗어나 세상이 인정하는 천재 화가가 된 스트릭랜드와 비록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예술과 함께하는 풍부한 삶을 꿈꾸는 스트라로브.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일까?
<달과 6펜스라는 제목>
소설 속에서 달과 6펜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달과 6펜스라는 비슷한 형태의 둥글고 빛나는 은빛의 물체가 가진 의미의 대착점을 이용한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삶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밤하늘 둥실 떠있는 빛나는 달은 이상, 즉 스트릭랜드가 닿고자 했던 것을 뜻한다. 그리고 6펜스는 당시의 동전으로 세속적이며 낮은 가치의 물질적인 세상, 그가 외면했던 것을 뜻한다.

작가 서머싯 몸은 그의 전작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소설의 논평 중 "달을 동경하기 바빠 발 밑에 떨어진 6펜스도 보지 못한" 캐릭터라는 평에 마음이 쓰였고 그 다음 작품인 이 소설에서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과연 6펜스를 줍지 않은 것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달을 추구하는 것이 더없이 재미있는 놀이는 아닌지 생각하던 그는 나중에 한 서신에 "땅에 떨어진 6펜스를 찾다보면 하늘의 달을 보지 못한다"는 말을 썼다. 나는 달과 6펜스라고 하면 스트릭랜드가 6펜스를 발로 밟고 서서 달을 향해 손을 뻗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후기>
쉬운 문체로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면서도 문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서머싯 몸의 소설다웠다. 책을 읽고나서 폴 고갱의 삶이 무척이나 궁금해진 것은 당연하지만 그의 삶을 모티브로 이런 괴물 같은 캐릭터와 소설을 창조해 낸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어졌다. 읽는 내내 쉽고 명료한 문장으로 그 순간의 생생함을 전하는 그의 문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조연 캐릭터들 조차 살아 숨 쉰다. 그들의 감정은 군더더기가 없으며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에 있어서도 부족함을 느낄 수가 없다.

이야기는 소설의 화자인 '나' 작가가 스트릭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프랑스 파리, 마르세유 그리고 타히티 섬에서 끝난 스트릭랜드의 여정을 따라간다. 런던과 파리, 마르세유 도시에서의 거친 거리의 느낌과 마지막 아름다운 천국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섬 타히티로의 여행이 무척 흥미롭고 생생하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리고 화가 폴 고갱은 타히티에서 정말로 천국을 본 것일까? 그 답은 이 소설을 통해 그리고 폴 고갱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소설 속 스트릭랜드가 눈을 멀어서까지 그렸던 천국도의 벽화가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와 같은 작품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